행위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창원아트위키

CWAR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3월 27일 (화) 05:53 판 (새 문서: 글룩 Christoph Willibald Gluck(1714~1787) 18세기에 있어서 오페라의 개혁자로서 글루크의 이름은 불면의 존재이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산지기...)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글룩 Christoph Willibald Gluck(1714~1787) 18세기에 있어서 오페라의 개혁자로서 글루크의 이름은 불면의 존재이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산지기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게 하려는 아버지와 다투고 나서 1732년 프라하로 가서 교회의 가수가 되기도 했고, 무도장에서 바이올린을 켜기도 하며 고생 끝에 가까스로 일류 첼리스트가 될 수 있었다.

1736년, 빈에서 그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밀라노로 가서 4년간 심마르티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46년에는 런던으로 갔다. 1754년부터 약 10년동안 빈의 궁정 악장으로 있었으며, 이때 제자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비의 초청으로 파리에서 여러해 있게 되었을 때 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1762년 빈에서 새로운 구성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발표하여 오페라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이어서 많은 혁신적인 오페라를 발표하여 이러한 개혁정신은 얼마간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다라 점차 퇴색되어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페라에 있어서 극과 음악이 모두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글루크의 이상은 19세기에야 비로소 베버, 바그너 등에 의해 실현하게 된다.